난자·정자 기증으로 태어난 아기의 부모 결정하는 특례입법
정자 기증으로 태어난 당사자…병원에 정보 공개 요구하기도
(도쿄=연합뉴스) 이세원 특파원 = 일본 출신 방송인 사유리(본명 후지타 사유리<藤田小百合·41>씨가 아기를 낳은 것을 계기로 한국에서는 비혼 출산에 관심이 커졌다.
사유리는 한국에는 비혼자가 시술을 받아 아기를 낳을 합법적인 길이 없어 일본에서 정자를 기증받았다고 밝히면서 결혼하지 않은 여성이 아이를 낳을 권리에 대한 논쟁을 촉발했다.
정자나 난자를 기증받아 아기를 낳는 것과 관련해 최근 일본에서는 관심을 끄는 주제는 '아기의 알 권리'다.
이런 방식으로 태어난 아기의 부모를 누구로 볼지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 일본 여야가 '생식 보조 의료 제공 등 및 이에 의해 출생한 아이의 친자 관계에 관한 민법 특례에 관한 법률(이하 특례법)안'을 발의하면서 논쟁이 시작됐다.
친자 관계 등을 규정한 현행 일본 민법은 타인의 난자나 정자를 받아 아기를 낳는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만든 것이라서 생식보조의료(불임치료)로 태어난 아기의 법적 지위가 제도적으로 명확하지 않다는 지적에 따라 특례법 제정이 추진됐다.
특례법안은 난자 제공으로 아이가 태어난 경우 낳은 여성이 어머니가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아내가 남편의 동의를 얻어 다른 남성의 정자를 기증받아 아이를 낳았다면 남편이 아기의 아버지가 되며 그는 이를 거부할 수 없다고 규정했다.
특례법안은 최근 참의원 본회의에서 가결됐고 중의원 본회의를 통과하면 불임 치료로 태어난 아기의 법률상 부모를 아이를 낳은 여성과 그 여성의 남편으로 규정하도록 제도가 확립된다. 연내 입법이 완료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아기가 성장해 자신의 유전적 부모를 알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은 법안에 포함되지 않았고 이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아라 다다시(荒中) 일본변호사연합회 회장은 아이가 자신의 출신을 알 권리 등 생식 의료 기술의 이용을 둘러싼 정보 관리 제도에 대한 규정이 없다고 지적했다.
정자 기증으로 태어난 당사자인 이시즈카 사치코(石塚幸子·41) 씨는 최근 기자회견을 열어 우려를 표명했다.
그는 "제공자를 모르거나 부모가 진실을 감춤으로써 아이는 괴로워한다"며 아이가 자신의 유전적 부모에 관한 정보를 받을 권리를 보장하지 않은 상태로 입법을 추진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일본 여론은 아이의 알 권리를 인정하는 것을 지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오카야마(岡山)대가 작년 6∼9월 실시한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65%가 정자가 난자 기증으로 태어난 아기가 제공자의 정보에 접근할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고 반응했다.
일본에서는 정자 기증으로 태어난 사람이 어른이 된 후 자신의 뿌리를 찾겠다며 병원을 상대로 정보 공개를 요구했으나 병원 측이 '자료가 남아 있지 않다'고 해 뜻을 이루지 못한 사례도 있다.
의료계에서는 아이의 알 권리를 보장하는 경우 정자나 난자 제공자가 없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당장 특례법 입법에서는 인정될 가능성이 커 보이지 않지만, 아기의 알 권리 논쟁이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 주목된다.
일본 정부는 인구 감소 및 저출산에 대응하기 위해 불임 치료에 대한 제도적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정권은 불임 치료에 대해 공적 의료보험을 적용하는 방안을 2022년도부터 실행하겠다는 계획이다.
연립 여당인 공명당이 법률상 부부뿐만 아니라 사실혼 관계에 있는 이들도 적용 대상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고 다무라 노리히사(田村憲久) 일본 후생노동상도 이를 검토하겠다고 밝힌 점이 눈에 띈다.
sewonlee@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20/11/29 08:08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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